산과 들에 여린 새싹이 돋더니 어느새 온통 초록으로 덮였다.
따뜻해진 날씨에 새들도 알을 낳고, 올챙이랑 도롱뇽도 나날이 쑥쑥 커간다.
우리 동네 사람들도 농사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겨우내 단단했던 논의 흙을 갈아엎고 물을 대어 논 흙이 부드러워지게 한다.
굵은 흙덩이는 써래질로 곱게 부수어 모 심을 준비를 마친다.
집 근처 논 한 구석에 길게 자리한 비닐하우스 안에는 한 뼘 정도 자란 모들이 빽빽하다.
우리집 모내기 하는 날, 아침 일찍부터 아버지는 모를 뽑아 한 줌씩 묶어서 모내기를 할 논으로 나르신다.
언니와 나는 품앗이를 하러 오실 동네아저씨들이 드실 새참과 점심 준비에 바쁘다.
큰 가마솥에는 평소에는 보기 힘든 흰 쌀밥이 가득 구수하게 지어지고, 작은 무쇠솥에서는 국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화로에는 정말 보기 힘든 들기름 바른 김이 석쇠 위에서 구워지고, 다른 화로 위에는 새벽부터 콩을 갈아서? 만든 두부가 먹음직스럽게 졸여지고 있다.
이런 저런 반찬들을 차례차례 만들어 큰 통에 담으면 이제 논으로 나르는 일만 남았다.
큰 소쿠리에 밥과 반찬들을 넣고 큰 주전자에 막걸리를 걸러 담고 잔을 챙긴다.
소쿠리를 머리에 인 언니가 앞장서고 막걸리 주전자를 든 내가 그 뒤를 따른다.
논에 도착하니 바지를 걷어부치고 모를 심는 아저씨들의 노랫소리가 흥겹다.
"진지 드세요~" 하고 외치니 아이구 반갑다 하시며 논흙이 묻은 손을 논두렁 풀로 쓱쓱 닦으며 하나 둘 나오신다.
여기저기 앉으신 아저씨들께 밥을 푸고 국도 푸고 나물도 담아 나누어드린다.
아저씨들은 막걸리부터 꿀꺽꿀꺽 넘기고 크으~~ 좋다~ 감탄을 하시고 나서 밥을 드신다.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바쁘게 준비한 보람으로 뿌듯하다.
빈 그릇들을 챙겨서 논 옆 개울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아저씨들이 찔레순을 한 줌 꺾어다 주신다.
잘 먹었다는 인사다.
언니와 나는 서둘러 집으로 와서 바로 새참 준비를 한다.
1년 중에 모 심는 날과 벼 베는 날은 온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를 하기 때문에 큰 행사를 치르는 듯 분주하다.
작은 잔치가 벌어지는 듯 정신없이 바쁘지만 평소에 먹기 힘든 음식들을 먹을 수 있어서 기다려지기도 한다.
뿌리를 잘 내리고 포기 수를 늘리며 커가는 벼를 보면 기분이 참 좋다.
잘 자라서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면서 벼베는 날을 기다린다.
'병마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소한 들기름의 시작 (8) | 2025.05.01 |
---|---|
꼬마 농사꾼들 (2) | 2025.04.25 |
비료포대 우비 (2) | 2025.04.22 |
칡 캐먹다가 지각한 사연 (2) | 2025.04.19 |
봄 비가 내리면 텅 비는 우리집 (2) | 2025.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