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좁은 산길이 며칠간 어지럽고 분주하다.
포크레인과 덤프트럭들이 들락거리더니 산자락이 깎이고 길이 넓어졌다.
어른들은 새로 만들어진 길을 신작로라고 하신다.
좁은 길 양쪽에 무성한 풀에 맺힌 이슬에 바짓가랑이가 다 젖었는데, 또 맞은 편에서 오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 비키느라 몸이 납작해지는 느낌이었는데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길이 넓어지니 한동안 어리둥절하겠다.
길이 정돈되고 난 후 학교를 가는데 깎인 산자락의 단면이 드러나면서 각종 나무뿌리가 잘린 채로 보이고 뱀 굴로 보이는 구덩이도 보이니 신기하여 온통 시선을 뺏겨버린다.
그러다가 눈이 둥그래질 만큼 보기 힘든 보물을 보게 되었으니 바로 땅 깊숙히 들어앉은 엄청난 크기의 칡뿌리가 흰 녹말을 내뿜으며 잘린 단면을 보여준다.
어른들도 곡괭이로 팔 수 없는 깊이에 자리를 잡았으니 수십년간 크기를 키워서 아주 튼실하다.
우리들은 모두 달려들어 칡뿌리를 잘라( 뜯어먹는다고 하는것이 더 정확하다) 먹기에 바쁘다.
여태 먹었던 칡뿌리와는 다르게 섬유질도 질기지 않고 분을 가득 머금고 있어서 특유의 쓴맛보다 단맛이 더 많다.
크기도 워낙 크다보니 한참을 먹어도 반도 줄지 않는다.
정신없이 먹는데 누군가가 "이러다 학교에 지각하겠다"하는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든다.
시계가 없으니 시간을 알 리도 없어 무조건 달리기 시작한다.
속으로 지각이 아니길 빌며 도착하니 이미 수업이 시작되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칠판에 글씨를 쓰고 계시던 선생님이 돌아보시고는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신다.
왜 지각을 했는지 물어보신다.
칡 캐먹다가 늦었다고 하면 혼날것 같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생각을 하는데, 선생님께서 "너 입이 왜 이렇게 검은거니?" 하신다.
아뿔싸! 칡을 먹으면 입이 검어진다는 것을 잊었었다.
할 수 없이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무안함에 머리를 긁적인다.
선생님께서는 어이가 없으신지 픽 웃으시고는 군밤을 콩 때리신다.
"건강식을 먹었구나"
아이들은 와르르 웃고 나는 더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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