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를 끝낸 논은 휑뎅그레하다.
봄부터 어린 모들로 가지런히 채워졌던 논은 여름이 되면서 늘어난 벼 포기로 빈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초록으로 가득한 논은 가끔 이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릴 뿐, 겉으로 보기에는 고요하지만 살짝 들여다보면 굉장히 분주하다.
우렁이들이 낸 길을 따라 각종 곤충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가끔 출몰하는 까만 물닭의 횃질에 화들짝 몸을 감춘다.
개구리밥도 부지런히 면적을 늘려가고, 소금쟁이는 개구리밥 사이로 미끄럼을 타며 제 시간을 즐긴다.
무당개구리가 펄쩍 뛰면 잔잔하던 논물이 작은 파장을 멀리 보내며 동그란 물자국들을 여러 개 만들어낸다.
아버지는 매일 이른 시간에 논을 돌아보러 나가신다.
논으로 들어가는 물이 막힌 곳은 없는지 살피고 멧돼지들이 짓밟아 무너진 논둑을 다독다독 두드려 다져 놓으신다.
두더지나 들쥐가 파 놓은 굴도 메우고 밟아 단단하게 다져놓고 병충해가 생기지는 않는지 세심하게 살피신다.
비가 많이 올 때면 만사를 제쳐놓고 논으로 달려가서 온 몸이 비에 흠뻑 젖고 세찬 비에 연신 얼굴의 빗물을 훔쳐내면서 삽으로 물길을 파서 논의 벼들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하느라 온 힘을 쓰신다.
밤새 비바람에 시달린 벼들이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면 하루 종일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워 묶느라 진땀을 빼기도 한다.
이렇거 온갖 정성을 들이고 노심초사 돌본 벼들은 그간의 노고에 보답하기라도 하는 듯 가을바람에 튼실하게 잘 여물어서 황금빛을 반짝이며 기분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벼가 여물어 갈 때면 내내 채웠던 물을 완전히 빼내어 논바닥을 꾸덕하게 말린다.
알갱이를 단단하게 채운 벼들이 그 무게에 고개를 숙이면 벼베기가 시작된다.
한줌씩 잡고 낫으로 밑둥을 베면 사각사각하는 소리과 베어지는 느낌이 참 좋다.
다 베어낸 벼는 볏단으로 묶어서 쌓아올린 다음 영양분 가득한 따뜻한 가을 햇볕에 며칠 말린 후 탈곡을 위해 집으로 나른다.
나는 아버지의 지시를 받고 텅 빈 논을 샅샅이 살피며 떨어진 벼이삭을 줍는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 같은 빈 논에서 생각보다 많은 벼이삭을 줍고 나면 보너스를 받은 것 처럼 기분이 좋다.
찬서리가 살짝 내린 초겨울 어느 날, 대강의 가을걷이를 마친 우리집 식구들은 농사 짓느라 고생한 몸에 보양을 하기 위한 특식을 먹기로 한다.
그 특식은 논 한 구석에 있다.
양동이와 목장갑, 삽을 갖추고 추수를 끝낸 논으로 간다.
모든 논바닥이 다 말라서 단단한데, 한군데는 물이 고여있다.
갯벌처럼 거무스레한 흙 위로 살짝 덮인 물에 기름기가 돌고 그 기름진 물에 무지개가 서려있다.
민물에 기름기가 서린다는 것은 저 물렁한 논에 뭔가 생물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지를 한껏 걷어 올리고 맨발로 그 곳으로 들어간다.
오빠랑 아버지가 삽으로 흙을 마구 퍼올리기 시작한다.
논바닥 여기저기에 퍼올려진 검은 흙덩이 사이로 뭔가 꿈들거리는 것들이 보인다.
여름 내내 논바닥 속에서 힘을 키우고 겨울을 지내기 위해 영양을 가득 채운 미꾸라지다.
언니들과 나는 양동이를 들고 흙을 헤친다.
등이 검고 배가 노란 토종 미꾸라지들이 흙 속으로 숨으려는 몸짓이 바쁘고 다급하다.
잡았다 싶으면 손가락 사이로 매끌거리며 빠져나가는 바람에 쫓다가 미끄러운 흙에 꽈당 넘어지기가 일쑤다.
미끄러워서 미꾸라지인가보다.
목장갑을 끼고 반드시 잡겠다는 단호함으로 입을 앙다물고 이리저리 숨는 미꾸라지들을 향해 과감하게 몸을 던진다.
잡으려는 자와 숨으려는 미꾸라지들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삽으로 퍼올리기가 끝나면 웅덩이가 된 그 곳으로 직접 들어간다.
쑥쑥 빠지는 흙이 발가락을 간질인다.
미끌어지지 않기 위해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며 비틀비틀 발을 옲기다 보면, 발가락 사이로 꿈틀거리는촉감이 잡힌다.
잽싸게 손을 넣어 잡아올리니 제법 굵직하다.
한나절을 미꾸라지와 씨름을 하니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몸에 힘도 빠지면서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든다.
양동이를 들여다보니 굵직한 미꾸라지가 그득하다.
이만하면 됐다 싶어서 이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여름 내내 농사 짓느라 굵은 땀을 흘리며 고생한 우리 식구들이 추어탕을 먹고 몸보신이 되어 건강하게 겨울을 보낼 것이니 기분이 참 좋다.
나는 입이 짧은 편이라 잡은 미꾸라지를 먹지는 않았으나 잡는 재미를 봤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좋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굴뚝에 연기가 피어 오른다.
추어탕을 끓이는 구수한 냄새가 작은 오두막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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