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촉촉하게 내린다.
어른들은 봄 비는 보약이라고 좋아하신다.
학교에서 돌아와 방 문을 여니 아무도 없는 방 안에 산나물만 수북하게 쌓여있고 화로에는 막장찌개가 자글자글 졸아들고 있다.
아마도 아버지와 언니들은 비가 내리니 농사를 제껴두고 산으로 나물을 뜯으러 갔을것이다.
나도 빨리 나물을 뜯으러 가야겠기에 마음이 급해진다.
아랫목 이불 속 밥통 안에서 밥을 꺼내어 화로 앞에 앉아 막장을 쓱쓱 비벼서 한 입 가득 우물거린다.
툭툭 썰어넣은 무가 된장을 가득 품고 구수한 맛으로 밥을 마구 부른다.
밥그릇을 대강 씻어 부뚜막에 엎어놓고 다래끼와 보자기를 챙겨 뒷산으로 올라간다.
비가 제법 내리고는 있지만 비 맞는 것 쯤이야 아무렇지 않다.
산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비쭉비쭉 고개를 내민 고사리가 반갑다.
다래끼에 취나물이며 으아리, 고사리, 다래잎 등등 봄철에 먹을 수 있는 산나물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산등성이를 오를 때쯤 산나물로 다래끼가 가득 찬다.
허리춤에서 보자기를 풀어서 나물을 옮겨 담고 보자기 끝을 대각선으로 묶은 후 나물보따리를 등에 걸치고 나머지 보자기 끝을 가슴팍에 묶는다.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며 나물을 뜯어서 비워진 다래끼를 다시 채워간다.
쓰러진 나무등걸에 목이버섯이 줄지어 나 있다.
오동통 도톰하고 짙은 갈색이 비에 반짝거린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버섯이니 주저없이 딴다.
휙 스치는 바람결에 향긋한 더덕냄새가 스친다.
풀숲을 뒤적거리며 찾아보니 싸리나무를 감고 오르기 시작하는 더덕이 보인다.
반갑고 신난다.
어느덧 다래끼가 다시 다 차서 집으로 내려와 방문을 여니 그새 나물더미가 커져있다.
나도 보자기를 풀고 다래끼도 엎어 나물더미를 높여놓고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바위를 잡고 모퉁이를 도는데 언니가 허리를 숙이고 나물을 뜯고 있다.
한 번 씩 웃고 헤어져서 산을 헤집고 다니다보면 아버지도 만나고 다른 언니도 만난다.
저녁때가 되면 온 식구들이 집으로 내려와 저녁을 대강 먹고 방 가운데 쌓인 나물 주변에 둘러 앉는다.
아버지의 지휘 아래 삶아 말려야 하는 묵나물과 바로 먹을 수 있는 단나물을 분리하는 작업을 한다.
누가 더덕을 많이 캤는지 보기 힘든 나물을 뜯었는지 견주기도 하고 각자의 무용담에 방안이 시끌시끌하다.
손톱은 나물을 뜯느라 까맣게 풀물이 들었어도, 비 맞은 몸이 약간은 으슬거려도 다 같이 모여서 떠들고 웃으며 나물을 손질하는 병마골 작은 오두막집은 정겨운 행복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병마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료포대 우비 (2) | 2025.04.22 |
---|---|
칡 캐먹다가 지각한 사연 (2) | 2025.04.19 |
뱀 떼를 만나다 (0) | 2025.04.14 |
봄철 먹거리 장터가 열렸다 2 (0) | 2025.04.10 |
봄철 먹거리 장터가 열렸다 1 (2) | 2025.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