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쌀쌀한 날, 아침부터 아버지는  쟁기를 챙기신다.
밭을 갈아엎으시려나 보다.
쟁기를 얹은 지게를 지고 외양간에서 소를 끌고 나가신다.
나도 거들 것이 있을까 하여 종종 뒤를 따라나서는데, 부엌에서 설겆이를 마친 언니도 손을 닦으며 따라 나선다.
아버지는 집 옆의 묵힌 밭으로 가서 소에게 쟁기를 매신다.
우리가 병마골로 오기 전, 누군가가 농사를 짓다가 떠난 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서 마른 풀이 무성하다.
낫과 갈퀴로 풀을 걷어내고 소를 몰면서 밭을 갈기 시작한다.
척박해보이던 밭은 한 쪽부터  붉은 황토로 뒤덮힌다.
몇 바퀴를 돌며 밭은 갈던 아버지가 잠시 밭갈이를 멈추시더니 집에 가서 광주리를 가져오라고 하신다.
영문도 모르고 커다란 광주리를 가지고 오니 갈아엎은 밭을 다니면서 메를 주우라고 하신다.
분홍빛 예쁜 꽃을 피우는 메가  밭에서 몇 년을 묵어 자랐는지 고구마만큼 굵고 길쭉한 뿌리가 허옇게 여기저기 드러나있다.
언니와 나는 광주리가 가득 찰 만큼 많은 메를 신나게 주워넣는다.
밭갈기를 끝낸 아버지가 보시더니 "그 놈들 참 실하다" 하시며 흐뭇해 하신다.
언니는 개울에서 벅벅 씻은 메를 무쇠솥에 넣고 찐다.
굴뚝의 연기가 춤을 추며 멀리 퍼지는 것을 멍하게 보고 있는데, 메 먹자~ 하며 언니가 부른다.
방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쟁반에 수북하게 쌓인 메가 더운 김을 폴폴 내며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껍질을 까서 아버지께 먼저 드리고 나도 호호 불면서 한입 먹는다.
감자 같기도 하고 고구마 같기도 한 맛에 포슬거리는 식감까지 정말 맛있다.
아버지는 이 메가 수 십년 자랐을 것이라며 귀한 것이니 많이 먹으라고 하신다.
정말 그 날 맛있게 실컷 먹은 메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은 것이었다.
들판에 흔하게 보이는 식물이지만 뿌리가 먹을 만큼 굵은 것은 다시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메꽃이 예쁘게 필 때면, 오래 전 밭에 툭툭 튀어나와 있던 허연 메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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