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사료용 노란 옥수수를 많이 심는다.
가을에 알갱이만으로 가득한 옥수수자루 수 십개가 커다란 트럭에 가득 실려 나가는 것을 보면 무더운 여름에 애쓴 보람이 있다는 생각에 뿌듯해진다.
봄에 씨를 뿌리고 나서 수확할 때까지  온갖 정성을 다 해서 살피고 돌봐야 하니 쉽지 않은 일이다
새들이 씨앗을 파먹지 않도록 쫒아야 하고 새싹이 올라오면 뿌리가 튼튼해질 때까지 잘견디라고 흙을 북돋아 주어야 한다.
풀이 영양분을 빼앗을까 김도 자주 매주어야 하고 어느정도 자라면 곁가지도 제거해야 한다.
여름이 되면 여린 수염이 비쭉 나온 옥수수토시가 층층이 난 잎 사이로 자리를 잡고 날이 갈수록 통통해진다.
옥수수알갱이가 제법 모양을 갖출 때부터는 멧돼지를 경계해야한다.
가족을 데리고 옥수수 밭을 덮치는 날에는 밭 자체를 뭉개버리기 때문에 애써 돌본 옥수수 농사를 망치기 일쑤이다.
사나운 동물이니 맞서서 싸우기도 어려우니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해마다 겪는 일에 고민하던 아버지와 오빠는 목재를 가지고 옥수수 밭 한 가운데에 원두막을 만들었다.
한 낮에 더울 때는 원두막 위에서 수박이나 참외를 먹으면서 낮잠을 자기에 아주 좋다.
그렇지만 밤중에 멧돼지로부터 옥수수를 지키기 위해 만들었으니 원래의 목적에 따라 순번을 정해서 당번을 서기로 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아버지와 언니, 오빠와 내가 한 조가 되었다.
저녁을 든든하게 먹고 양철 세숫대야와 빨래방망이를 준비해서 원두막 위로 올라갔다.
어둠이 덮히고 달이 뜨기 전 까지는 정말 칠흑같이 깜깜하다.
불도 켜지 못하고 긴장하면서 주변의 소리에 귀를 쫑긋하며 경계를 한다.
혹시나 멧돼지가 원두막을 들이받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크다.
그 때 산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나더니 쉭쉭 콧김을 뿜으며 멧돼지 한 무리가 옥수수밭으로 들어서는 기척이 들렸다.
어둠 속에서 눈을 마주친 오빠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양철 대야를 힘껏 두드리며 목청껏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놀란 멧돼지가 흥분해서 달려들까봐 원두막 기둥에 바짝 붙어서 정신없이 치고 소리를 질렀다.
멧돼지들도 놀랐는지 두두둑! 부스럭 타닥거리면서 산으로 내뺀다.
다시 올까봐 한참을 두드리다가 기진맥진 해서 대야를내려놓고 벌러덩 누워버렸다.
어느 새 둥실 떠오른 달님과 쏟아질 듯 빼곡하게 들어찬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별 일 없었다는 안도감에 스르르 눈이 감긴다.
밤 새 울어대는 소쩍새 소리를 지장가삼아 자면서도 작은 부스럭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하면서 용감한 남매의 옥수수 지킴은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맛있는 아침밥을 먹고 어젯밤 무용담을 풀어놓는다.
오늘도 한 낮은 덥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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