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가에 나가보니 얼음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졸 들린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얼음 두께를 줄여가며 열심히 흐르는 맑은 물줄기가 힘차다.
한낮이면 먼 산에 아지랑이도 구불거리는 것을 보니 봄이 기지개를 한껏 펴고 있나보다.
언니와 나는 겨우내 묵은 빨랫감을 한아름 들고 집 앞 냇가로 나간다.
넓적하고 큰 돌을 비스듬히 물에 기대어 놓은 빨래터에도 그새 얼음이 풀리고 한가득 물이 늘었다.
아직은 시린 냇물에 집에서 끓여 온 더운 물에 손을 적셔가며 빨래를 한다.
엉덩이를 들썩거려가며 빨래를 비비고 헹구느라 여념이 없는 와중에, 비눗물을 튕겨가며 두드리는 빨랫방망이 소리가 졸졸거리는 시냇물소리와 짹짹거리는 참새소리까지 어울려 빨래터 음악회가 열린 듯하다.
빨래를 다 마치고 옷들을 비틀어 짜서 대야에 담는데 뭔가 나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고개를 돌려 개울 건너를 보니 논두렁을 지탱하고 있는 돌담이 햇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다.
저 햇빛이 빨래하는 내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구나 하니 마음이 몽글몽글하다.
그런데 돌 틈 사이로 뭔가가 움직인다.
가만히 보니 겨울잠에서 깬 뱀이 고개를 내밀고 혀를 날름거린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뱀과 눈이 딱 마주친다.
개울을 사이에 두고 뱀과 한바탕 눈싸움이 시작된다.
언니는 배고플 뱀이 무섭다며 빨리 들어가자고 재촉을 하지만 나는 눈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다.
그런데 자꾸 보니 뱀의 눈이 반짝반짝 영리해보이고 예쁘기까지 하다.
한참을 쳐다보던 뱀이 스르르 어디론가 가면서 눈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작은 애벌레는 끔찍히도 무서워하면서 뱀은 무섭지 않다는 나를 언니는 어이없어 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는 우리를 돌담의 햇살이 끝까지 배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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