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뒤울 안에 심어놓으신 딸기가 제법 예쁘고 탐스럽게 익었다.
가장 먼저 아버지께 따다 드리고 우리는 아예 딸기밭에 앉았다.
초록 이파리를 살짝 들추면 빨갛게 익은 딸기가 모습을 드러내고 한 입 물었을 때 향기와 맛도 참 좋다.
집 딸기도 맛있지만 산과 들에서 자라는 산딸기도 맛있다.
덩쿨에 열리는 멍석딸기는 크기는 큰데 나무에 열리는 산딸기보다 시큼하다.
산딸기는 덩쿨이든 나무든 모두 가시가 많아서 손을 뻗다가 찔리기 일쑤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 딸기가 잔뜩 모여있는 곳은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나만의 비밀장소이다.
딸기가 한창 익을 때가 되면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비밀장소로 향한다.
빨간 딸기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것이 멀찌감치에서도 보인다.
설레는 마음에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바구니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양 손으로 바쁘게 딸기를 따기 시작한다.
산딸기나무는 돌이 쌓여있는 곳을 좋아하나보다.
돌무더기 위에 자리를 잡아서 딸기를 따려면 발을 잘못 디뎌서 삐끗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한다.
비틀비틀 휘청거리기도 하고 여러 번 넘어질 뻔 하지만 내 눈과 손은 딸기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한참을 정신없이 따다보니 바구니에 딸기가 가득하다.
우리 식구들이 넉넉하게 먹겠다.
그래도 아직 남은 딸기가 많다.
이제부터는 내 입에 털어넣기가 시작된다.
손과 팔에 가시에 스친 상처가 늘어가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데 발목에 서늘한 느낌이 스치는 걸 느끼자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진다.
돌이 쌓인 곳은 뱀들의 서식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개를 살며시 숙이고 발밑을 보니 유혈목이 한 마리가 스르륵 내 다리 사이로 지나가고 있다.
자칫 움직이기라도 하면 뱀이 놀라서 물 수도 있으므로 숨도 쉬지 못한 채 얼어붙는다.
몇 시간이 지난 듯한 두려움의 시간이 지나고 뱀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다행이도 물리지 않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그래도 딸기바구니는 챙겨들고 둘둘 딸기를 흘려가며 천년만년의 시간이 흐른 듯 힘겹게 집으로 돌아온다.
당분간 딸기는 따러 가지 않을것이다.
산딸기는 나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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