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은 눈이 내리고 쌓이고를 반복하는 겨울 깊숙한 날, 눈 상태를 살펴보니 제법 단단하고 두께도 적당히 두껍다.
눈썰매를 타기에는 최적의 상태인 것이다.
우리 동네는 대부분의 밭이 비탈이니 썰매 탈 곳을 정하는 것은 아주 쉽다.
오늘의 썰매장은 개울 건너 복순언니네 밭이다.
경사도 너무 가파르지 않고 넓어서 좋긴 하나, 밭 아래에 개울이 있어서 속도조절을 하지 못하면 개울에 처박힐 염려가 있다.
그러나 개울도 두껍게 얼어있고 얼음 위에 눈이 또 두껍게 쌓여있으니 젖을 걱정은 없다. 다만, 불쑥불쑥 솟아있는 바위들만 조심하면 된다.
아침밥을 먹는 내내 썰매 탈 마음이 조급하다.
밥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비료포대부터 찾는다.
비료포대 안에 두툼하게 볏짚을 가득 넣고 입구를 얼기설기 꿰매서 볏짚이 튀어나오지 않게 한다.
여기에 새끼줄을 단단히 매서 손잡이를 만들면 신나게 썰매 탈 준비가 된 것이다.
진한 입김을 내뿜으며 썰매장에 도착하니 벌써 몇몇은 썰매를 타고 있다.
비료포대썰매를 놓고 양 다리를 벌려서 썰매에 털썩 앉아서 심호흡을 한다.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양쪽 발을 번갈아 앞으로 디뎌서 비탈 시작점에 당도하니 먼저 내려간 친구가 개울에 고꾸라지듯 처박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저러지는 말아야지 생각하며 양 발과 엉덩이에 힘을 주니 스르르 썰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점점 속도가 붙고 귀 옆으로 스치는 바람소리가 쉭쉭 빨라진다.
경사가 끝나는 지점이 보이면 발뒤꿈치를 세워서 브레이크를 잡는다.
첫 번째 썰매타기는 한쪽 발 브레이크에 돌이 걸려서 옆으로 고꾸라졌고, 두 번째 썰매는 너무 늦게 브레이크를 잡는 바람에 개울에 보기좋게 처박혔다.
세 번째는 친구와 부딪쳐서 굴러서 내려갔고, 네 번째는 멋부리겠다고 양 발을 들고 타다가 썰매가 거꾸로 돌아서 한바퀴 뒤집혀서 내려갔다.
여기저기 저마다 다른 실수로 폭소가 터진다.
와글와글 시끌시끌한 썰매장은 하루종일 성업중이다.
볼이 빨개지고 손발은 꽁꽁 얼어도 그만 탈 생각이 없다.
산골의 짧은 해가 산마루에 걸쳐서 집에 가라고 독촉을 하면 그제서야 납작해진 썰매를 끌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눈이 녹으려면 아직 멀었으니 당분간은 여기저기 썰매장이 계속 열릴 것이니 추위와 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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