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따스한 날, 그 봄빛이 근질거려 친구를 불러내서 집 근처 하천가 산책에 나섰다.
며칠 전만 해도 온통 바스러지는 지난 해 풀들로 가득했던 둑에 쑥이며 풀들이 연두색 봄 옷 자랑이 한창이다.
찔레 덩쿨 속에서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길래 찬찬히 들여다보니 메추리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
알록달록 예쁜 새알을 보니 문득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다.
한겨울 매섭던 추위가 따스한 봄기운에 밀려 떠난 산골은 여기저기 봄소식들이 파릇파릇 차오르기 시작한다.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양지에는 진달래, 홑잎, 냉이, 달래 등등이 혹독한 겨울추위를 이겨내고 장군처럼 당당하다.
여기저기에 초록 새싹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는듯이 온통 고개를 내민다.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엄청 시끌시끌 할 것만 같다.
나는 종다래끼를 허리에 차고 고사리나 취나물, 홑잎 등 봄나물을 따러 야트막한 뒤산을 오른다.
아직은 여리고 작은 나물거리들은 그 향긋함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봄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등성이를 올라 평지를 걷는데 풀숲에서 푸드덕 하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까투리 한마리가 허둥지둥 도망가는 것이 보인다.
꿩이 있던 풀숲을 가만히 들춰보니, 약간은 푸르스름한 색을 띄는, 달걀보다 좀 작은 꿩알들이 둥지 안에서 옹기종기 등을 맞대고 있다.
새알을 보니 겨우내 영양이 부실한 우리가족들의 꺼칠한 얼굴들이 떠올라 영양 많고 맛있는 새알 대파찜을 해주고싶은 생각이 든다.
꿩에게는 미안하지만, 여덟 개의 알 중 다섯 개를 다래끼에 조심스럽게 넣고 덤불을 빠져나온다.
식구 수가 많으니 새 알을 좀 더 찾아보기로 한다.
일부러 발소리를 크고 어지럽게 내니 여기저기서 푸드덕거리며 도망가는 새들이 여럿이다.
꿩알, 비둘기알, 메추리알을 다래끼가 가득 차도록 담고 집으로 가다가 텃밭에 들러 제법 실하게 큰 대파를 최대한 길게 잘라서 몇개 가져간다.
부엌에 들어가 화롯불의 재를 헤쳐보니 불씨는 거의 없지만 아직 뜨끈뜨끈하다.
새 알들을 양푼에 깨서 넣고 젓가락으로 휘휘 깨뜨려 대파에 조심조심 흘려넣는다.
대파에 알이 채워지면 입구를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꿰맨다.
이렇게 여러 개를 만들어 열기가 남아있는 화로의 재 속에 깊숙히 넣고 재를 다독다독 다듬어둔다.
새알이 맛있게 익기를 기다리며 봄나물을 뜯으러 산으로 향한다.
한참 재미있게 돌아치다 보면 다래끼 안에는 각종 다양한 봄나물들이 제 각기 다른 향을 풍기며 가득 들어찬다.
묵직한 다래끼를 출렁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다래끼를 풀어놓기가 바쁘게 부엌으로 향한다.
화로의 재는 미지근하게 식어 있다.
부지깽이로 재를 뒤적뒤적 뒤져서 새알 품은 대파를까낸다.
쭈글쭈글 힘이 없는 대파를 조심조심 꺼내서 온통 잿빛잿가루를 후후 불고는 납작한 싸리바구니에 가지런히 놓는다.
그중 하나를 잡고 대파를 살살 벗기면 알맞게 익은 새알이 먹음직스런 구수한 향내를 풍기며 뽀얀 자태를 드러낸다.
한 잎 베어 물면 부드럽고 고소한 맛에 대파 향이 더해져서 그 맛이 일품이다.
더 먹고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식구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10분이 한시간 같다.
드디어 아버지가 지게에 소 풀을 한 짐 지고 들어오시더니, 아버지 뒤를 이어 언니들이 줄줄이 들어온다.
신나는 마음으로 대파새알찜이 놓인 바구니를 쭈욱 내민다.
아버지와 언니들은 대파 하나씩을 잡고 껍질 벗기듯이 대파를 주욱 죽 벗겨내며 맛있게도 먹는다.
내내 일했으니 출출하던 차에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놨다며 칭찬이 봄비처럼 쏟아진다.
어깨는 으쓱하고 마음이 몽글몽글한 행복으로 가득해진다.
1년 중 이맘 때에만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니 나는 비록 새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며칠 동안은 새 둥지를 찾으러 다닐 것이다.
우리가 나누는 두런거림에 인기척을 느낀 메추라기가 화들짝 놀라 알들을 둔 채 도망간다.
그 날갯짓이 일으키는 바람을 따라 대파새알찜의 구수하고 향긋한 냄새가 내 코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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