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의 연둣빛 나뭇잎들이 나날이 초록으로 색이 진해진다.
한낮에는 제법 햇빛이 따끈따끈해서 자꾸 그늘을 찾게 된다.
논두렁에 가득 찬 풀 사이로 빼꼼빼꼼 보이는 빨갛고 앙증맞은 뱀딸기가 보석이 박힌 듯 예쁘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이른 더위를 휘적휘적 헤치며 오는 터라 느릿하다.
길 이쪽 저쪽의 밭들은 제각기 여러가지 작물들을 보듬고 알차게 키워가느라 넓은 품을 한껏 펼친다.
동네 사람들이 대부분 누에를 키우는 터라 밭 가장자리에 뽕나무를 심은 집들이 많다.
어른 키 만한 뽕나무에 오디가 주렁주렁 열렸다.
초록색, 빨간색, 검정색이 섞여서 꽃이 핀 듯 예쁘다.
나무마다 달라서 어떤 나무의 오디는 검정색으로 잘 익은 오디들로 뒤덮였다.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오디 만찬을 즐겨야겠다.
밭 주인 아저씨가 가지가 부러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하셨으니 명심하고 잘 익은 오디를 따 먹기 시작한다.
입안에 가득 퍼지는 달콤함에 기분이 한껏 좋아진다.
작은 오디를 하나하나 따서 입으로 가져가자니 손이 입보다 훨씬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한참 따먹다 보니 팔도 아프고 턱도 지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오디는 더 먹고 싶으니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책가방을 뒤적뒤적 하니 라면땅 과자 봉지가 보인다.
친구가 과자를 나누어 주면서 부스러기가 남은 봉지 째 준 것이다.
남은 부스러기를 입에 털어 넣고 오디를 따서 과자 봉지에 담기 시작한다.
오디가 다닥다닥 많으니 과자 봉지가 금세 가득 찬다.
과자봉지의 입구를 모아잡고 뱅뱅 돌려서 한 손으로 꼭 눌러 잡는다.
오디로 꽉 찬 봉지가 터질 듯 팽팽하다.
아랫쪽의 한 쪽 모서리를 이로 조심스럽게 뜯으니 오디 즙이 주르륵 흐른다.
얼른 입을 대다가 턱으로 목으로 오디즙이 묻어버린다.
과자봉지 모서리에 입을 댄 채 손등으로 턱을 쓰윽 닦고 본격적으로 오디즙을 빨아먹기시작한다.
달콤한 오디즙이 입 안에 가득 차니 꿀꺽꿀꺽 목으로 넘기며 100% 오디과즙을 맘껏 즐긴다.
헐렁해진 봉지를 주물러 오디즙을 한껏 짜서 끝까지 다 짜먹고 봉지를 열어보니 수분을 다 빼앗긴 오디 찌꺼기들이 패잔병처럼 뭉쳐있다.
이런 생각을 왜 이제야 했을까 하며 기분 좋은 뿌듯함에 어깨가 한껏 부푼다.
입가와 손을 씻으러 개울로 내려가서 개울물에 비친 얼굴을 보니 여기 저기 오디즙이 묻어 얼룩덜룩하다.
누가 보기 전에 얼른 세수부터 하고 턱이며 목을 박박 씻어 얼룩을 지운다
집에 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은 검은 내 입을 보고 오디 깨나 먹었구나 하며 웃는다.
날마다 익어가는 오디를 날마다 먹을 수 있어서 날마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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