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집 이사하는 날이다.
며칠 전부터 차근차근 쌌던 짐을 옮기고, 나머지 물건들도  잘 챙겨서 마지막 리어카에 싣고 간다.
추억도 많고 정들었던 집을 떠나려니 섭섭해서인지 자꾸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새로 살 집에 도착하여 모두 자기 할 일을 하느라 바쁘다.
아버지는 큰 짐들을 자리잡으시고 언니들은 부엌 살림이며 광에 넣을 곡식들, 옷가지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아버지와 언니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심부름을 하느라 나름 바쁘다.
한나절을 바쁘게 움직이니 대강 짐들이 집으로 들어갔다.
물건들이 제자리를 잡으려면 며칠은 걸리겠다.
아버지는 마루에 앉아 물 한대접을 들이키시더니 우리들에게 주먹만한 돌을 많이 주워오라고 말씀하신다.
"이삿짐 정리하다 말고 웬 돌?" 나는 그 말씀이 의아한데 언니들은 다 안다는 듯이 소쿠리를 들고 사립문 밖으로 나간다.
언니들을 따라 가서 나도 돌맹이를 주워 담는다.
세 언니가 돌들을 각자 들 수 있는 만큼 나누어 담아 들고 나는 윗옷을 벌려 몇 개의 돌을 담아들고 집으로 간다.
아버지는 울타리 안쪽에 흙을 고르고 계신다.
우리가 주워 온 돌을 아버지 계신 곳에 놓자, 아버지는 그 돌들로 테두리를 쌓아 네모난 공간을 만드신다.
금방 가로세로 2미터 정도의 작은 밭이 생겼다.
한잠 쪼그리고 작업을 하신 아버지는 허리를 펴시면서 뒷뜰에 모종이랑 씨앗이 있으니 가져오라고 하신다.
언니들이 후다닥 가지고 온 모종은 작은 새싹들이지만 뭔지 다 알겠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는 맨드라미, 채송화, 봉숭아, 붓꽃, 라이락, 작약, 백일홍, 사루비아 등등 작은 꽃밭이 더 작아보일 만큼 심을 것이 너무 많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물봉선화를 슬쩍 한구석에 심는다.
아버지는 꽃밭이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자 이번에는 집 뒤뜰로 가서 울타리 안쪽의 약간 비탈진 곳에 딸기를 가득 심으신다.
곧 하얀 딸기꽃이 피고 빨간 딸기가 초록 잎 뒤에 살짝 몸을 숨기고 깊은 속까지 잘 익어갈 것이다.
한동안 손에 발에 흙을 묻혔으니 개울에서 시원하게 씻고 마루에 털썩 앉아서 곧 피기 시작할 꽃 이야기들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삿짐 정리는 뒤로 미루고 꽃밭부터 만드시는 아버지가 어린 내 눈에도 멋있다.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모종들이 뿌리를 잘 내릴 때까지 개가 짓밟는 것도 감시해야 하고 병아리들이 흙을 헤치지 않게 관리를 잘 해야한다.
이른 여름부터 가을까지 예쁜 꽃들을 만날 날이 벌써부터 가슴 설레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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