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개가 하도 짖어서 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며 나가보니 이등병과 상병 아저씨 둘이 추위에 덜덜 떨며 손에 라면을 들고 엉거주춤 서 있다.
불침번을 서는데 너무 추워서 뜨끈한 라면이라도 먹고 싶다며 미안한 표정으로 부탁을 한다.
졸립고 춥고 귀찮아서 선뜻 대답을 하지 않고 어찌할까 하는데, '커험!' 하는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
두말 하지 말고 끓여주라는 뜻이다.
하는 수 없이 부엌의 불을 켜고 들어가 가마솥에 물을 붓고 아궁이에 불을 붙인다.
무쇠솥이라 물이 끓으려면 한참 불을 때야한다.
군인아저씨들은 마당에 선 채 기다리길래 추우니 부엌으로 들어와 불을 쬐라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들어온다.
엄청 추웠나보다 하는 생각에 귀찮아했던 것이 오히려 미안해진다.
라면을 커다란 밥통에 담아서 건네주니 아저씨들은 미안함, 고마움, 행복함을 다 얼굴에 담고는 연신 꾸벅거리며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라면을 끓인 솥을 다 닦고 아궁이 불씨를 단속하다가 문득  다른 초소의 군인들도 춥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솥에 물을 넣고 불을 때서 팔팔 끓여 양동이에 담아서 아저씨들에게 가져다 준다.
어둠 속의 기척에 잔뜩 경계를 하며 총부리를 들이대서 깜짝 놀라긴 했지만, 양동이를 드리면서 '난로삼아 손이라도 녹이세요' 하니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한다.
괜히 기분이 더 좋아져서 집으로 돌아온다.
아침에 나가보니 라면을 담았던 밥통이 깨끗하게 씻은 상태로 마루에 놓여있다.
맛있게 드셨을 것을 생각하니 또 기분이 참좋다.



'병마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랑치고 가재잡기?  (0) 2025.05.16
덩달아 군사훈련 4  (0) 2025.05.11
덩달아 군사훈련 2  (0) 2025.05.11
덩달아 군사훈련 1  (0) 2025.05.11
김 매는 부녀  (2) 2025.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