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기간 동안은 걸어서 집에 가야하므로 우리만 일찍 하교한다.
반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으쓱으쓱 학교를 나선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를 터덜터덜 걷는다.
먼 거리지만 친구들과 떠들고 웃으면서 걸으니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다.
종종 구보하는 군인 행렬을 만나면 휘파람을 불고 목청껏 불러대고, 그런 군인들을 단속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뒤엉켜 한동안 왁자하다.
또 운전연습 하는 군용트럭이 줄줄이 지나가면 누런 흙먼지를 옴팡 뒤집어쓰고는 툴툴거리기도 한다.
가끔 군인들을 가득 태운 트럭이 지나갈 때면 군인들이 던져주는 건빵을 받아 먹는 재미도 있다.
손을 입에 대고 "저는 언니가 많아요~" 하면 건빵보다 고급진 건조볶음밥도 날아온다.
신나서 집에 오면 아버지는 힘들게 훈련하는 군인들의 식량도 뺏어먹느냐며 타박을 하신다.
내 방은 추수철만 되면 마른 옥수수로 가득 채워지고 밤마다 옥수수알갱이를 따야하는데, 훈련기간 동안에는 내 방을 군인들에게 내어줘야 한다.
추운 밤에 밖에서 자는 군인들을 교대로 돌아가며 따뜻한 방에서 재우려는 아버지의 배려로 나는 아버지 옆에서 칼잠을 자야한다.
부엌의 아궁이 두 개중 하나와 솥 하나도 군인 전용이다.
이래저래 불편하지만 식구들 누구도 불만스럽지 않다.
훈련이 끝나고 나면 내 방의 옥수수는 군인들이 다 딴 알갱이들로 가득하다.
내가 할 노동이 줄어드니 군인아저씨들이 고맙다.
다만 벽에  아저씨들이 주소를 써 놓아서 도배를 다시 해야 하는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물끄러미 주소들을 보고 있노라니 군대에서의 힘듦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도배하기 전에 될 수 있으면 많은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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