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찬 이슬이 서리로 얼어붙을 때, 온 동네가 군인들의 함성으로 가득하다.
매년 이맘때면 있는 대규모 군사훈련이다.
수 백인지, 수 천인지 모를 군인들이 아군과 적군으로 나뉘어 모의 전쟁을 한다.
투구에 두른 띠의 색으로 구분을 하는데, 우리는 아무 쪽이나 다 응원한다.
추수를 끝낸 밭에는 한가득 군인들의 천막이 들어차고 아직 수확하지 못한 일부 농작물은 늘 배가 고플 것 같은 군인들의 차지가 된다.
우리 집 주변의 넓은 밭에도 온통 군인들의 천막이 들어찼다.
아침에 등교하다 보니 천막 밖으로 군홧발이 비쭉 튀어나와 있다.
신발도 벗지 못하고 자나보다 하고 생각하는데, 군화 위로 서리가 하얗게 덮여있다.
얼마나 추울까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서 마른 옥수수잎을 한 무더기 긁어다가 덮어준다.
큰 개울가 자갈밭에는 줄줄이 솥이 걸리고 밥이며 국을 끓인다.
밥이 다 되었는지 솥뚜껑을 열고  밥을 푹푹 푸는데, 주걱이 아니라 식용 삽인 것이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본다.
어떤 군인은 투구에 소주를 콸콸 붓더니 그 소주로 세수를 한다.
왜 그러는지 궁금하지만 버스가 올 시간이 다 되었으니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군인아저씨들이 뭔가 설명하고 있다.
신작로에 지뢰를 묻어서 일반 차량이 통제되어 버스가 다닐 수가 없어 우리는 군용 트럭을 타야 한단다.
우리도 모의 전쟁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아서 왠지 신나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 생각을 한 것을 곧 후회하게 되었다.
가리개도 없는 군용 트럭에 옹기종기 앉아서 덜컹거리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다 차가 달리기 시작하니 차가운 바람에 살이 찢어지는 것 같다.
난간을 잡은 손은 시리다 못해 감각이 없어지고 이는 딱딱 부딪친다.
하얗게 서리를 덮어쓰고 혼이 다 빠진 몰골로 등교를 한다.
집에 올 때는 그나마 그런 트럭도 없이 12킬로를 걸어야한다.
지뢰는 1주일 정도 후에 걷는다고 하니 꽁꽁 얼어붙는 등교는 당분간 계속 되겠다.
그래도 매년 하는 이 훈련이 재미있어서 서릿발 등교쯤은 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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