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 문을 비추는 아침 햇살이 점점 강해지더니 논에, 밭에 작물들이 키도 쑥쑥 크고 이파리도 넓어진다.
날씨가 더워지면 풀과의 전쟁이다.
비 온 다음날은 작물과 함께 풀도 쑥쑥 자라기 때문에 온종일 밭에 엎드려 김을 매는 일이 일과의 대부분이다.
이렇게 뜨거운 여름을 더 뜨겁게 불태우고 나면 농작물들은 튼실한 수확물로 보답을 한다.
오늘은 참깨를 괴롭히는 벌레인 깻망아지를 잡으러 참깨밭으로 출동이다.
연두색의 깻망아지는 굵은 몸집에 길이도 길어서 아주 징그럽고 무섭다.
하지만 고생하며 돌본 참깨에 해를 입히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석유통과 솜방망이를 들고 참깨밭으로 가니 연분홍 참깨 꽃이 지고 줄기마다 참깨가 조롱조롱 열려서 예쁘게 잘 여물어가고 있다.
둘째언니, 세째언니, 네째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는 석유를 흠뻑 적신 솜방망이를 들고 참깨를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한다.
줄기나 잎과 색이 비슷해서 꼼꼼하게 잘 봐야한다.
눈에 띄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깨 줄기가 뭔가 두께가 다른 것을 발견한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자세히 보니 역시나 깻망아지다.
석유방망이로 벌레를 툭툭 몇 번 건드리면 크고 굵은 깻망아지가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꿈틀거리는 것을 보니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아부지~~ 하고 부르니 아버지는 발로 콱 밟아! 하신다.
그걸 어떻게 하느냐고 울상을 지으니 둘째언니가 와서 큰 돌맹이로 콱 눌러놓는다.
일단은 벌레가 안 보이니 좋다.
아버지가 가까이 오시더니 이렇게 하면 벌레가 안 죽고 다시 나올 수 있다며 돌맹이를 들추고 발로 밟으신다.
아버지도 벌레가 징그럽고 싫을텐데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참고 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좀 더 용기를 내 보기로 한다.
이번에는 이파리 뒤에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석유방망이를 들이댄다.
땅으로 떨어져서 꿈틀거리는 깻망아지를 차마 밟지는 못하겠어서 긴 나무꼬챙이로 돌맹이 위에 올려놓고 큰 돌을 던져서 맞춘다.
벌레가 죽을 때까지 던지고 또 던지는 것을 보고 모두 웃는다.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는 아버지와 협동하자고 하신다.
눈이 밝은 내가 깻망아지를 떨어내면 아버지가 밟기로 한다.
그러자 징그럽고 무서운 것을 꾸욱 눌러참고 있던 언니들도 이때다 싶었는지 다 같이 하기로 한다.
여기 저기에서 벌레를 발견하면 아버지~~하고 부르고 아버지는 장홧발로 콱콱 밟으며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한다.
헙동을 하니 일도 빨라져서 어느덧 참깨밭을 샅샅이 훑고 일이 끝났다.
밭두렁을 지나서 집으로 가는데 바람 한 줄기가 휘익 참깨밭을 스치니 참깨들이 이리저리 몸을 숙인다.
그 모습이 마치 벌레를 잡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 처럼 느껴져서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뿌듯한 마음으로 참깨가 고소하게 익어가는 것을 지켜본다.
'병마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뱀딸기가 맛있다는 생각 (0) | 2025.06.24 |
---|---|
숨은 닭 알 찾기 (4) | 2025.06.17 |
장닭에게 고춧가루를 먹였더니 (2) | 2025.06.06 |
드디어 나도 지게가 생겼다! (2) | 2025.06.06 |
오디를 더 맛있게 즐기는 방법 (0) | 2025.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