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참 부지런하신 분이다.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셔서 소 먹이부터 챙겨 주고 논에 가서 물이 잘 들어가는지, 논에 물은 적당하게 차 있는지를 살펴 보시고 소가 먹을 신선한 소꼴(풀)을 지게의 소쿠리가 넘치도록 가득 지고 오신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지게는 늘 바쁘다.
봄에는 거름을 져 날라야 하고. 농기구들을 싣기도 하며,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소 꼴을 져 나른다.
겨울에는 농한기이니 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어림없다.
산에 가서 땔깜을 베어 날라야 하니 사계절 쉴틈이 없다.
바쁜 아버지는 졸졸 따라다니는 나는 아버지 처럼 지게를 가지고 싶어서 아버지에게 내 지게를 만들어 달라고 졸라 보지만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빙긋 웃으시기만 하고 도통 만들어 주실 생각이 없다.
아버지가 꼴을 베러 가시면 나는 아버지 뒤를 졸졸 쫒아가서 내가 들 수 있을 만큼의 풀을 한아름만 들고 올 수 밖에 없고. 나무를 하러 산으로 가도 마찬가지이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처럼 지게에 한가득 지고 오고 싶다.
어느 날, 아버지의 지게가 외양간 옆 벽에 기대어 있는 것을 본 나는 아버지의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여기저기 떨어진 나무삭정이들을 주워 모으니 한아름쯤 된다
칡넝쿨을 잘라서 반으로 가르고 다시 반으로 더 갈라서 나뭇짐을 묶는다.
지게에 얹고 지게 끈을 양 어깨에 걸고는 지게작대기를 짚고 끙! 하고 일어선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지만 나뭇단이 크지 않아서 그런대로 질 만하다.
지게작대기로 무게중심을 잡으면서 집으로 향한다.
나를 보고 놀라실 아버지를 생각하니 슬그머니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집이 저만치 보일 때부터는 내리막 비탈길이다.
마당에서 어른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비탈길로 접어들어 성큼성큼 내려가는 순간, 지게 다리가 비탈길에 걸리면서 앞으로 고꾸라진다.
내 키에는 긴 지게다리가 내리막길에서 걸리고 만 것이다.
지게를 진 재로 길 옆 풀숲에 쳐박히고 나니 여기저기 쓸리며 난 상처가 아플 법도 한데 행여나 지게가 부러졌는지 살피느라 아픈 줄도 모르고 정신이 없다.
다행이도 지게는 멀쩡하다.
나뭇단을 머리에 이고 지게를 질질 끌면서 집으로 간다.
아버지는 지게를 받으시며 내 꼬락서니를 보시더니 혀를 끌끌 차신다.
옷을 툭툭 털고 개울에 가서 세수를 하는데 나뭇가지에 쓸리고 찢긴 상처들이 물에 닿으니 몹시 쓰리고 아프다.
그래도 창피한 마음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집으로 들어간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눈이 휘둥그레 커지고 만다.
마당에 작고 아담한 새 지게가 지게 작대기에 고여 서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내 키에 맞는 지게를 만드신 것이다.
나는 좋아서 팔짝빨짝 뛴다.
그런 나를 보시고 아버지는 "이 녀석아~ 일하는 게 뭐가 좋다고 지게타령이야~" 하신다.
나는 신이나서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간다.
삭정이를 또 신이나게 주워서 지게에 얹고 집으로 간다.
내리막길을 막 내려가도 지게다리가 걸리지 않는다.
내 지게는 그 날 이후로 나와 한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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