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짓는 집에서는 소가 가장 큰 재산이다.
아버지는 정말 소를 애지중지 하신다.
쌀알 한톨, 콩알 하나도 아깝다는 아버지는 소가 여물을 잘 먹지 않으면 콩이든, 옥수수든 아낌없이 소에게 먹이신다.
날씨가 추워지면 가장 먼저 외양간의 빈 틈을 꼼꼼하게 틀어막아 바람이 새어들지 못하게 단속부터 하시고, 낡은 이불(아직 쓸만한데)이나 옷가지 등을 꿰매어 소의 옷을 만들어 입혀주신다.
우리는 농사일에 종일 매달려서 힘들고 배고픈데도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소 여물부터 챙기고 나서 밥을 먹어야 한다.
말 못하는 짐승부터 헤아려 챙겨줘야 한다는 말씀을 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한 일이지만, 아버지 친구들은 그런 아버지를 유별나다고 하신다.
내가 해야하는 일은 추우나 더우나 외양간 바닥의 볏짚을 매일 갈아줘야 하는 것이다.
밤새 소 배설물로 오염된 볏짚을 쇠스랑으로 찍어 외양간 밖으로 내보낸 후 깨끗하게 쓸고 새 짚으로 두툼하게 깔아줘야 한다.
밖으로 빼낸 오염된 볏짚은 한군데 높이 쌓아서 발효시킨 후 거름으로 쓴다
이 두엄더미는 발효되면서 한겨울에도 김이 모락모락 나고 눈이 쌓여도 금방 녹아서 어린 내 눈에는 늘 신기해 보였다.
겨우내 발효가 된 두엄은 이른 봄에 밭에 뿌려서 농작물을 심기 전에 밭에 영양을 준다.
두엄을 지게 소쿠리에 가득 담아서 밭 여기저기에 뿌리고 갈퀴로 밭 전체에 펴는 일은 아버지와 합동으로 한다.
아직은 입김을 진하게 내뿜는 이른 봄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중노동이다
열심히 집과 밭을 왕복하는데 아버지가 나를 보시더니 피식 웃으신다.
왜요? 하고 여쭈니 아버지는 내 머리카락에 붙은 두엄 한 덩이를 떼어내시며, "우리 막둥이 머리카락이 잘 자란다 했더니 두엄거름을 먹어서 그렇구나" 하시면서 이제는 배꼽을 잡고 웃으신다.
읔 더러워~ 진저리를 치면서도 아버지의 큰 웃음에 덩달아 나도 폭소를 한다.
우리의 웃음소리에 먼 산 등성이의 아지랑이도 함께 웃는 듯 일렁임이 진해진다.
느긋한 늑대 / 2025. 1. 25. 13:39 / 병마골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