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은 차 두대가 겨우 비켜 갈 정도의 신작로를 만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좁고 울퉁불퉁한 오솔길이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펼쳐지는 풍광이 제각기 다른 모습이라 천천히 걷는 두어시간의 하굣길이 절대 지루하지 않다.
집이 가까워 질 무렵 만나는 상여보관소인 화채간은 낮에도 지나가기가 무섭다.
통나무를 길게 쪼갠 널빤지로 얼기설기 만들어서 안이 언뜻언뜻 들여다보여서 더 무섭고, 동네 사람들이 겪은 무서운 이야기들이 많아서 또 무섭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 쪽을 쳐다보지 않도록 애를 쓰면서 빠른 걸음으로 지나친다.
오른쪽이 화채간이라면 왼쪽은 바위 낭떠러지 아래로 동네를 관통하는 큰 개울물이 흐른다.
그 날도 화채간 앞을 빠르게 지나고 있는데,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화채간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고 깜짝 놀랐으나 자세히 들으니 왼쪽의 개울에서 들린다.
나뭇가지를 젖히고 내려다보니 작은 동물들이 몇 마리가 보인다.
적어도 맹수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바위 몇 개를 건너서 가까이 가서 보니 귀여운 담비다.
엄마가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돌맹이를 들춰서 가재를 잡아 먹이고 있다.
어미 담비도 예쁘지만 새끼들이 너무 귀여워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보고 있었다.
자세를 바꾸다가 미끄러지며 돌맹이들이 개울로 굴러떨어지자 담비 가족이 깜짝 놀란다.
평화를 깬 것이 미안한데 놀라는 모습이 또 귀여워서 계속 보려고 하는데 누군가 뒷덜미를 휙 낚아채서 몸이 덜렁 들려서 길 위로 옮겨진다.
깜짝 놀라서 보니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부리나케 뛰어가신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면서도 아쉬워서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집에 당도해서 한숨을 돌린 아버지가 내 머리에 꽁! 군밤을 먹이신다.
"야 이녀석아~ 담비가 얼마나 무섭고 사나운 동물인데 그렇게 가까이에서 보고 있어!"
저렇게 귀여운 동물이 사납다니?
담비는 살쾡이에게도, 호랑이에게도 덤비는 동물인데다 새끼를 데리고 있을 때는 예민해져서 더 사나워진다는 설명을 듣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 귀여운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다음에 담비를 만나면 멀찍이서 봐야겠다.
그 후로 화채간 앞을 지날 때 마다 흘끗흘끗 기웃기웃 개울을 내려다보지만 다시는 담비 가족을 만날 수가 없어서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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