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겨울을 보낸 산골의 들판과 산은 앙상한 나뭇가지와 마른 풀들이 서걱거리며 봄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눕히고 일어선다.
그런 모습들이 내 눈에는 저마다 겨울을 견디어 낸 이야기들을 하느라 웅성거리는 것으로 보인다.
가느다란 가지와 연약한 풀들이 다시 새로운 싹을 올리고 일어서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침 저녁으로 추운 이른 봄이지만, 한 낮에는 먼 산등성이에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며 더디게 오는 봄을 손짓으로 재촉한다.
점심밥을 드신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산에 가시고 나는 개울에서 얼음 아래로 졸졸 흐르는 물을 보다가 산 아지랑이를 보다가 하며 느긋한 오후를 즐긴다.
한참만에 아버지가 지게에 나뭇단을 높게지고 내려오시는것이 보인다.
반가워서 달음박질을 쳐서 아버지에게 달려가니 아버지는 넘어질라 하시며 빙긋 웃으신다.
아버지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는데 나뭇단에 진달래 나무가 한 묶음 꽂혀있다.
봉오리가 조금 토실해 보이는 것이 그 안에 꽃이 들어서는가보다.
아버지는 마당에 지게를 내려놓고 진달래 가지를 뽑아주신다.
나는 빈 병을 찾아서 물을 반쯤 채운 다음 진달래 가지를 꽂아서 방에 놓는다.
날마다 물을 갈아주니 어느 날 봉오리가 살그머니 벌어지더니 발그래한 분홍빛 꽃잎이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아직 주변에는 삭막한 겨울빛이 남아있는데, 우리 집 안방에는 봄 손님이 일찍 오셨다.
꽃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남들보다 일찍 꽃손님을 맞이한다며 이웃집에서 꽃구경을 오신다.
우리 아버지는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하며 방 안을 화사한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예쁜 진달래를 보고 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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