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서리가 햇밫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나뭇잎들이 몸을 비틀어 수분을 내보내고는 그만 힘들어 갈색이 되었다.
아버지는 뒷산 깊숙히 들어가셔서 숯을 구워 낼 숯가마를 만드시느라 날마다 황토와 씨름하신다.
숯을 구워내려면 엄청난 체려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아버지 옆에서 이것 저것 거들던 내게 집에 내려가서 막걸리를 걸러오라고 하신다.
힘에 겨운 노동에 막걸리가 큰 도움이 되시는가보다.
집으로 내려와 울타리 안쪽에 묻어놓은 막걸리 항아리의 뚜껑을 여니, 시큼한 냄새가 훅 끼친다.
노란 옥수수를 섞어 넣은 탓인지 빛깔이 노르스름하다.
체에 걸러서 주전자에 담아 기다리실 아버지를 생각해서 서둘러 집을 나선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작은 개울을 건너 밭을 지나 논둑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늦가을 햇빛이 따사롭다.
논둑에 앉아서 잠시 숨을 고르는데, 막걸리가 뚜껑 틈으로 한 줄 새어 흘렀다.
손가락으로 훑어서 맛을 보니 달달하고 맛있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뚜껑에 조금 따라서 홀짝 마셔본다.
생각보다 달고 맛있다.
쬐끔 마셔도 아버지가 눈치를 못 채실테니 하면서 한번 더 홀짝 마신다.
그렇게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한 주전자를 다 마셔버리고 만다.
세상이 어질어질 빙글빙글 돌아서 논둑에 그대로 누워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 것이 그만 잠이 들어 한참을 잔다.
얼굴을 간지럽히는 마른 풀에 잠에서 깨어보니 주전자의 술은 비어있는데다 기다리실 아버지가 생각나서 화들짝 놀라 집으로 내달린다.
서둘러 막걸리를 걸러서 산으로 달음박치듯 올라간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당도하니 아버지가 왜 이리 늦었냐고 하신다.
나는 더듬거리며 오다가 술을 쏟아서 다시 걸러 오느라 늦었다고 변명을 한다.
아버지는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시더니 빙긋 웃으시면서 한마디 하신다.
"술을 니 얼굴에 쏟았구나."
아뿔싸! 아직 얼굴이 빨간가보다.
창피하고 민망해서 붉은 얼굴이 더 붉어진다.
서산에 기우는 해가 내 얼굴빛과 같은 붉은 노을을 만들며 놀리듯 허허 웃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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