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골 이야기

나의 검정고무신

느긋한 늑대 2025. 7. 14. 16:32

신고 다니던 고무신 바닥이 다 닳았다.
장에 다녀오신 아버지가 새 신발을 사 오셨다.
물론 기차표 검정고무신이다.
신발 오른쪽에 꽃무늬가 돋을새김으로 있어서 여자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생고무 냄새가 아직까지도 진하게 난다.
나도 튼튼하고 예쁜 운동화를 신고 싶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을 잘 알고 아버지도, 친구들도 다 신고 다니니 크게 불만은 없다.
아버지는 내 발 사이즈 보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더 큰 신발을 사오셨다.
내가 키가  크고 발이 클 때 까지 고무신은 닳지도 않고 튼튼할 것이니 다 떨어질 때까지 신으려면 처음의 새 신발은 커야 하는 것이다.
내 어릴 적 고무신은 작아서 새로 사 본적이 없고 다 닳아서 밑창에 구멍이 크게 나야 새 신발을 신을 수 있다.
정말 이상한 것은 신발이 커서 걸을 때마다 헐거덕거리는데 뒷꿈치는 마찰에 의해 빨개지고 물집이 잡힌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신발이 뒷꿈치를 깨문다고 표현하신다.
새 신발은 내 뒷꿈치에 물집을 만들고 터져서 쓰리고 아프다가 딱지가 생기고 떨어져 다 아물때 쯤이 되어야 조금 닳아서 더 이상 깨물지 않는다.
나를 비롯해서 검정고무신을 신는 아이들은 모두 다 신발을 빨리 닳게 만드는 노력을 한다.
뒷꿈치를 뒤집어서 슬리퍼처럼 질질 끌면서 다니면 땅에 쓸려서 빨리 닳기를 바라고, 어떤 아이는 아예 돌맹이로 신발을 벅벅 갈기도 한다.
그래도 고무신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내 발 보다 큰 고무신은 평소에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뛰어야 할 때는 자꾸 벗겨져서 불편하다.
한번은 나무에서 뱀이 툭 떨어지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뛰었는데 한참 뛰다보니 신발이 벗겨진 것도 모르고 맨발로 뛰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신발 두 짝이 달려 모습을 하고 나란히 있는데 뱀이 신발 옆에서 꼼짝도 하지 않아서 참 곤란한 적도 있었다.
또 한번은 비가 많이 와서 집 앞 계곡물이 많이 불었길래 물봉선화 가지로 물레방아를 만들어 물살에 걸고 굴리면서 놀다가 돌멩이에 미끈덩 넘어지면서 신발이 한 짝 물에 떠내려갔다.
우당탕거리면서 쫓아갔지만 빠른 물살에 내 고무신 한 짝은 영영 보이질 않았다.
아버지에게 혼쭐이 나서 화장실 옆 구석에 앉아  훌쩍훌쩍 울고있는데 아랫집 아주머니가 주워서 가져오셨던 운 좋은 적도 있었다.
언니와 소꿉놀이를 할 때에는 개울 물을 담는 그릇이 되고, 다슬기를 담는 통이 되기도 한다.
친구들과 고무신을 한 발에 걸치고는 있는 힘껏 벗어던지고 누가 더 멀리 보내는지 내기를 걸고 게임을 하기도 한다.
대파 꽃이 동그랗게 피었다.
꿀벌이 윙윙거리며 한창 바쁘다.
고무신을 한 짝 벗어서 손에 쥐고 살금살금 벌에게 다가간다.
벌이 제 일에 정신없이 바쁠 때 고무신으로 휙 낚아챈다.
그리고는 큰 원을 그리며 팔을 마구 돌린다.
한참을 빠르게 돌리고 고무신을 털면 벌이 어지러워서 비틀비틀 정신이 없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벌 꽁무니의 침을 뽑은 다음 벌이 모아놓은 꿀을 쪽쪽 빨아먹는다.
달콤하고 쌉쌀한 꿀 향이 입 안 가득 향기롭다
볼이 넓적한 검정고무신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벌 사냥 이다.
벌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세월이 많이 흐른 후였다.
재래시장에 가면 가끔 볼 수 있는 검정고무신은 나에게는 많은 추억이 담겨있는 신발 그 이상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