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닭에게 고춧가루를 먹였더니
개, 고앙이, 닭은 우리집을 지키는 동물 3총사이다.
개는 뛰어난 청각과 충성심으로 무조건 짖어대고, 고양이는 존재감만으로 쥐를 막아준다.
닭은 딱히 우리를 지켜준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아버지가 특단의 조치를 하신 이후로 부터 가장 든든한 지킴이가 되었다.
잘 짖고 용감하던 도꾸가 세상을 떠나고 새로 가족이 된 흰둥이는 정말 순둥순둥해서 낮선 사람이 와도 멀찌감치에서 꼬리만 살랑살랑 흔든다.
산골의 외딴 집이라 산짐승이 들어올 수도 있고, 낯선 사람이 오면 경계도 해야 하는데 도통 이 녀석은 제 역할은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흰둥이만 보면 " 이녀석! 밥값을 해야지!" 하시며 나무라시는데 흰둥이는 눈치만 슬슬 보면서 주변을 맴돌기만 한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아버지는 암탉들을 끌고 다니는 두 마리의 장닭을 부르시더니 모이에 고춧가루를 섞어 주신다.
장닭들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모이를 맛있게 콕콕 찍어 먹더니 한참만에 매운걸 알았나보다.
고개를 홱홱 내젓고 모래흙에 주둥이를 박고 휘젓는 등 당황하는 모습이다.
너무 학대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는데, 이놈들이 고춧가루의 참 매럭을 알아버렸다.
틈만 나면 고추밭에 가서 땅에 떨어진 고추와 고추잎을 쪼아먹는다.
아버지는 그 후로도 몇 번 모이에 고춧가루를 섞어 먹이시며 너희들이라도 집을 지켜라 하신다.
정말 고춧가루를 먹고 사나워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장닭 두 마리는 누군가가 우리 집을 오기 위해 길 모퉁이를 돌아서서 들어오기만 하면 날개를 퍼덕이고 길길이 날뛰며 부리로 쪼아댄다.
싸리빗자루를 휘둘러 쫒고서야 겨우 말릴 수 있다.
아버지는 고춧가루를 먹여서 사나워진 거라며 허허 웃으신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닭들이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달려드는 닭들 때문에 한바탕 소동을 겪어야 한다.
닭부리에 찍히면 정말 아프다.
이제는 집에 올 때면 닭의 눈치를 봐야 하니 개가 순해서 했던 걱정 보다 더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아버지는 고춧가루를 조금만 먹일걸 하신다.
결국 우리집을 든든하게 지키던 장닭 두 마리는 갈수록 기세가 등등해져서 감당하기가 어려워지자 한여름 복날 동네 어른들의 몸보신에 희생되면서 닭의 시달림에서 벗어났다.
그 이후로 다시는 닭에게 고춧가루를 먹이지 않기로 했다.
나는 봄에 장터에서 사 온 병아리들이 커가면서 고추받으로 들어가면 얼른 쫒아낼 만큼 예민한 기억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