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골 이야기

뱀 떼를 만나다

느긋한 늑대 2025. 4. 14. 23:25

골바람이 뼛속까지 파고 드는 한겨울도 지나고 먼 산등성이에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는 봄이 오면 금새 산과 들은 온통 초록색 생기가 돈다.
10리도 넘는 산길을 걸어 학교까지 가야하는 우리들은 삼삼오오 재잘거리며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것이 힘든 줄도 모른다.
어느 햇빛 쨍한 토요일, 12시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남자아이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여자아이들은 뒤쳐져서 길가의 꽃도 한 번 쳐다보고, 풀숲도 들여다보며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그런데 앞서 가던 남자아이들이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이다.
무슨 일인가 하고 달음박질 쳐서 가보니 길 옆 산에서 엄청나게 많은 뱀들이 서로 뒤엉켜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종류도 다양한 뱀들이 산에서 끝없이 굴러떨어져 넓은 신작로에 가득 차고 길 아래 비탈로도 굴러떨어진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눈이 휘둥그레진 우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나이가 많은 오빠가  Y자형으로 자른 나뭇가지를 주며 뱀의 머리 부분을 누르라고 한다.
십여 명의 아이들은 양 손에 잡은 나뭇가지로 뱀을 누르고 양 발로도 뱀의 머리를 밟는다.
머리를 눌린 뱀은 꼬리로 나뭇가지와 다리를 휘감으며 조이기를 시작한다.
손 끝에 닿고 다리에 닿는 뱀의 감촉은 차갑고 축축해서 소름이 끼친다.
그 사이에 집이 가장 가까운 아이가 포대자루를 가지고 와서 뱀을 넣으니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러는 사이 그 많던 뱀들은 어디론가 모두 사라지고 없다.
포대자루를 낑낑거리며 들고 친구 집으로 가서 길고 좁은 뱀항아리에 넣으니 항아리가 뱀으로 가득하다.
이 뱀들은 뱀장수가 오면 팔아서 나누어 갖기로 했으니 뱀장수를 기다리느라 목이 늘어질 판이다
다음 날 아침, 우리들은 뱀이 잘 있는지 보려고 일찍 서둘러 친구 집으로 갔다.
뱀항아리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는데 이게 웬일,
그 많은 뱀들이 모두 죽어있는 것이 아닌가?
영문도 모르고 당황한 우리들을 본 친구 아버지가 오시더니 쯧쯧 혀를 차신다.
"이놈들아~ 뱀은 피부로 숨을 쉬는데 이렇게 가득 채우면 숨이 막히지"
우리들은 머리를 한 대 엊어맞은 기분이다.
아저씨는 지게에 뱀 항아리를 얹고 멀리 가서 묻고 오신다며 가신다.
두둑한 용돈을 기대했던 우리들은 실망이 이만저만 한 것이 아니었지만, 한 편으로는 뱀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에 괜시리 미안해진다.
뱀 잡는 것이 허용되었던 시절의 아찔한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