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골 이야기

노랑 삐약이들의 입주식

느긋한 늑대 2025. 3. 25. 17:38

길가의 새싹들이 겨우내 보고싶었다며 빼꼼빼꼼 고개를 내민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듯 여기저기 덩어리 진 흙을 들어올리며 세상을 귀여운 연두색으로 덮는다.
아기새싹들이 떠드는 소리가 온통 시끌시끌하다는 생각이 든디.
봄빛을 한아름 지게에 얹은 아버지가 장에 가신다.
며칠 전부터 닭장 이곳 저곳을 수리하시더니 병아리를 사 오신다고 하신다.
아버지의 뒷꼭지가 안보일 때까지 배웅을 하고부터 종일 기다린다.
괜히 닭장에 들어가서 청소도 하고 철망이 허술한 곳은 없는지, 모이통은 괜찮은지, 문짝은 튼튼한지 보고 또 보아도 시간은 참 더디게 간다.
모이통에 옥수수 가루를 좀 더 넣고 마당 아래 비탈에서 어린 풀을 뜯어다가 모이통 한 켠에 넣어둔다.
도꾸가 컹컹 짖을 때마다 집 모퉁이로 뛰어가기를 몇 번 하고는 아예 모퉁이 옆 나무에 올라앉는다.
뒷산 마루턱에 해가 걸터앉고서야 아버지가 돌아오신다.
멀리서 양 손에 묵직하게 들고 오시는 짐을 보니 병아리들의 삐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도꾸와 경쟁하듯 달려가서 아버지 손에 들린 병아리를 받아들고 냅다 집으로 달려들어간다.
닭장에 병아리들을 풀어놓으니 잠시 어리둥절하던 녀석들은 이내 이곳 저곳을 헤집으며 삐약거리기를 시작한다.
모이통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목이 말랐는지 물도 찹찹거리며 먹는다.
몇몇 녀석은 두려운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닭장 밖에서는 도꾸녀석이 난리가 났다.
들어오고 싶어서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컹컹짖기도 하고 철망 사이로 주둥이를 밀어넣기도 한다.
병아리들을 밟을까 조심하면서 밖으로 나와서 도꾸에게 군밤을 꽁 때리면서 한마디 한다.
"너 이녀석! 삐약이들 괴롭히면 안돼!"
닭장이 있는 작은 안마당이 노랑색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