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골 이야기

만두 빚는 날

느긋한 늑대 2025. 2. 25. 14:04

우리 집은 설 명절에 떡만둣국으로 차례를 지낸다.
그래서 명절음식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만두부터 빚는다.
언니는 먼저 밀가루반죽을 하면서 나에게 김치를 꺼내오라고 한다.
광으로 가서 땅에 묻은 항아리에서 살얼음이 서걱거리는 잘 익은 김치를 꺼내 양푼에 가득 담는데, 손이 시렵다 못해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그래도 김치 한 줄기를 잘라서 어적어적 먹으면서 임무를 완성한다.
김치를 잘게 다져서 물기를 짜고 다진 돼지고기에 밑간을 하고, 당면을 삶아서 잘게 써는 등 넓은 부엌이 분주한 사람들로 부대낀다.
본격적인 만두 빚기를 위해 준비된 것들을 방으로 가지고 가니 아버지는 벌써 둥글고 큰 상과 큰 도마를 준비해 놓으셨다.
도마에 반죽을 놓고 홍두깨로 둘둘 말아서 밀고 다시 펼쳐서 다른 방향으로 감아서 밀고를 반복하면 큰 도마가 모자랄 정도로 반죽보자기가 만들어진다.
작은 주전자 뚜껑을 반죽보자기 위에 놓고 꾸욱 누르면 동그랗고 예쁜 만두피가 된다.
반죽 짜투리는 다시 뭉쳐서 밀어 만두피를 계속 만들어낸다.
온 식구가 둘러앉아 만두를 빚기 시작한다.
나는 너무 어려서 옆에서 구경만 하라는 언니의 말에 설움이 터진다.
언니는 그런 내가 귀여웠는지 빙긋 웃으며 반죽 하나를 주면서 해보라고 한다.
역시 뜻대로 되지 않고 엉망이다.
나는 언제쯤 언니들처럼 잘 빚을까 하며 이리저리 주물럭거리는데, 아버지가 10살이 되면 할 수 있다고 위로하신다.
각각의 솜씨로 빚은 만두들이 큰 상에 가득하다.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낸 후에 모두 둘러앉아 만둣국을 먹는다.
힘들게 빚어서인지 더 맛있다.
아버지께서는 나이 수 만큼 만두를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 것이라고 하신다.
나는 속으로, 나이는 해마다 많아질텐데 만두를 다 먹지 못하면 어쩌지? 걱정을 한다.
골똘해진 나를 보며 온 식구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새해 첫 날 아침, 우리집은 방 안 가득한 웃음소리로 새해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