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여물을 뺏어 먹다
거의 매일 소의 저녁꺼리를 책임지는 나는 소 여물을 끓일 때마다 나는 그 구수한 향을 참 좋아한다.
볏짚, 옥수숫대, 콩깍지, 옥수수 껍질 등을 잘게 썰어서 넣고 물과 쌀뜨물을 부어서 푹 끓인다.
거기에 쌀겨를 섞어서 소의 영양까지 살뜰히 챙긴다.
때로는 늙은 호박이나 무우, 고구마 등을 주기도 하는데. 소도 특식이라고 여기는지 제법 많이 주는데 구유른 뚫을 듯이 싹싹 핥아먹는다.
정성을 다해서 먹여서인지는 몰라도 우리집 소는 동네의 어느 소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미모를 뽐낸다.
반드르한 윤기나는 털, 토실토실한 살집, 힘차게 휘두르는 꼬리, 자신감 넘치는 표정까지 다른 집 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것 같다.
밖으로 데리고 나갈 때 만나는 소들마다 우리 소에게 다가와서 한바퀴 돌면서 냄새를 맡는 것을 보면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어느 날, 아버지는 가마솥에 콩깍지를 유난히 많이 넣으셨는데, 그래서인지 구수한 향이 더 진하다.
손갈퀴로 여물을 뒤적뒤적 섞는데 콩깍지가 벌어지면서 토실하게 여문 콩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타작할 때 벌어지지 않은 콩깍지가 있었나보다.
잘 익어서 맛있어 보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박바가지를 가지고 와서 콩을 골라 담기 시작한다.
아궁이 앞에서 불씨를 정리하면서 하나하나 집어 먹으니 생각했던 대로 맛있다.
아마도 소한테서 뺏어먹으니 더 맛있는 것 같다.
이런 나를 언니와 아버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날 여물통 안에서 꺼내 먹은 콩은 여태 먹었던 그 어느 콩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