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골 이야기

독수리와 마주 보다

느긋한 늑대 2025. 2. 17. 22:50

전기가 없는 우리 동네는 해가 지고 어둠이 깃들면 정말 캄캄하다.
칠흑같이 어둡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아주 잘 알게 된다.
시간이 조금 지나 달이 뜨면 그제서야 사방이 훤해진다.
그렇다보니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참새, 까치, 비둘기 등 낮에 활동하는 새와 교대라도 하는 듯, 부엉이, 소쩍새, 올빼미가 푸드덕거리고 자기들만의 소리를 낸다.
우리집 도꾸는 이곳 저곳에서 짐승들이 기척을 낼 때마다 컹컹 짖다가 아버지에게 시끄럽다는 지청구를 듣고 마루 밑 제 집으로 슬그머니 들어간다.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일찌감치 저녁밥을 해 먹고 희미한 등잔불에 책을 읽기도 하고 뜨개질도 하다가 석유가 아까우니 일찍 잠자리에 든다.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으니 자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와야 한다.
방 구석에 요강이 있긴 하지만 식구 수가 많아서 가득 차기 일쑤이므로 가급적이면 자기 전에 최대한 해결하는 것이 좋다.
밤새 들리는 바람소리, 짐승들 소리를 아련한 꿈결에서 들으며 따뜻한 방에서 푹 잔 나는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깼다.
몇시나 되었을까 눈을 떠서 방문을 보니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창호지를 비춘다.
아궁이에 불 때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린다.
날이 밝고 있으니 혼자 나가서 볼일을 봐도 되겠다 싶어서 언니들이 깰까봐 살금살금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간밤에 눈이 왔는지 세상이 희다.
화장실까지 가기 싫어서 소 외양간 밖 두엄더미 옆에서 볼일을 보기로 한다.
내 오줌에 닿은 눈이 사그르르 녹는 것을 재미있어하면서 시원하게 볼일을 다 보고 일어서려다가 무심코 앞을 보고는 너무 놀라 바지를 추스르지도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서너발자국쯤 앞에 커다란 무엇이 서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거리를 벌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보지만 몸이 굳었는지 뜻대로 되질 않는다.
내 비명소리를 듣고 부지깽이를 든 채 달려나온 아버지도 그 큰 짐승에게 어지간히 놀라시는 것 같다.
불이 붙어있는 부지깽이를 휘두르며 훠이훠이 소리를 지르니 그 시커멓고 큰 짐승이 날개를 휘익 펴는데 날개한 쪽이 우리 집 문짝만 하다.
몸을 돌려 날아가는 걸 보니 그 짐승은 독수리였다.
나중에 안 사실로는 독수리는 살아있는 생물은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크게 위험하지는 않았겠으나 그 새벽에 마주했던 공포는 아주 오랬동안 나를 괴롭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