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는 날
서리가 하얗게 내린 아침,
온 식구가 일찍부터 분주하다
오늘은 김장하는 날이다.
겨울 내내 먹어야 하는 반찬거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김치인데다 종류별로 담가야 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필요하다.
아버지는 강아지와 고양이도 와서 도우라고 하신다.
어제 종일 다듬어 절여놓은 배추를 씻어 건져 물기를 빼는 것 부터 시작해서 총각무, 고들빼기, 깍두기, 석박지를 담글 준비를 한다.
무채를 썰고, 파도 다듬어 썰고, 마늘, 고춧가루, 새우젓, 찹쌀풀 등을 섞어서 김칫속을 버무리면 언니들은 절인 배추에 속을 넣기 시작한다.
언니들이 김칫속을 넣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둘째언니가 "너도 하고 싶니?" 한다.
고개를 끄덕끄덕 하니 아직은 어려서 안된다고, 하고 싶으면 밥 많이 먹고 얼른 크라고 한다.
입술을 비죽이 내밀고 불만스럽게 있으니 언니가 절인 배추의 노란 속잎을 따서 입에 넣어준다.
짭조롬하고 고소한 맛에 비쭉 나왔던 입이 쏙 들어간다.
아버지와 오빠는 부엌과 가까운 뒤란에 땅을 파고 항아리를 묻는 일부터 배추를 날라다 주고, 버무린 김치를 김치독 속에 넣는 등,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한다.
내가 하도 하고싶어 하니 언니는 작은 양푼에 절인배추 몆 개와 양념을 한 줌 넣어주며 해보라고 한다.
신이나서 언니들이 하는 것을 따라서 배추 속을 넣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재미있다가 한참 동안 배추 속을 넣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자세를 바꾸다보면 고춧가루 양념이 여기저기 묻기 일쑤다.
매캐한 고춧가루에 재채기도 나고, 추운 바람에 콧물이 나면 오빠나 아버지가 손수건을 들고 와서 "흥! 해" 하며 콧물을 닦아준다.
재잘재잘 깔깔깔 시끌벅적한 김장이 끝나 갈 무렵, 부엌은 무쇠 솥 안에서 돼지고기 익는 냄새가 구수하게 퍼지기 시작하면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언니는 김치속을 손으로 푹 퍼서 큰 그릇에 담고, 절인 배추에서 속이 노란 부분을 따서 고기에 싸먹을 준비를 한다.
그러는 새에 김장도 거의 끝나간다.
김치를 버무리고 남은 김칫속 양념에 배추 줄기를 쭉쭉 찢어 겉절이를 하고, 깍두기도 버무리고, 석박지까지 마무리가 되면, 고춧가루가 범벅이 된 큰 대야를 씻고, 이것저것 뒷 마무리를 한다.
뻐근한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편 다음, 무쇠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푸고, 돼지고기를 썰어 밥 먹을 준비를 한다.
속 노란 배추에 수육 한 점을 놓고 김칫속과 쌈장, 마늘 한 쪽과 삭힌 고추를 넣고 크게 한 입을 먹으면 고소하고 짭조롬한 환상적인 맛이 그간의 피로를 확 풀어버린다.
월동준비 중 가장 큰 행사를 마쳤다는 후련함으로 떠들썩하고 맛있는 시간이 길게 흐르고 있다.
이제 날씨가 더 추워져서 한겨울이 되면 땅 속에서 잘 익은 김치가 꺼내는 손이 시려울 정도로 얼음이 버석거리고, 한 입 먹으면 짜릿한 탄산이 터지는 맛있는 반잔으로 우리의 밥상에 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