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골 이야기

고소함의 끝판왕, 쐐기구이

느긋한 늑대 2025. 1. 14. 14:35

초여름 어느 날, 산딸기를 따 먹다가 쐐기에게 쏘여서 며칠간 퉁퉁 부은 팔에 엄청난 통증으로 고생을 했다.
그 이후로 쐐기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겨울에는 그 무서운 쐐기를 발견하면 반갑다.
겨울 간식으로는 그만이기 때문이다
줄기가 가느다란 관목이나 싸리나무 가지에 강낭콩만하고 회색과 흰색의 세로줄이 있는 쐐기집이 보이면 무조건 나무 째로 꺾어온다.
단단한 쐐기 집을 작은 망치로 톡톡 두드려서 깨면 연노랑의 애벌레가 미세하게 꿈틀거리는데, 처음에 보면 좀 징그럽다.
그러나 석쇠 위에 올리고 화롯불에 살살 굴려가면서 구워내면 노르스름하고 바삭한 것이 꼭 과자같다.
부서지지 않게 살짝 집어서 입에 넣으면 파삭! 하고 부서지며 엄청난 고소함이 입 안에 퍼진다.
한번 맛을 보면 처음의 징그럽다는 생각은 저 멀리 사라지고 쐐기 집을 발견하면 반가워진다.
여기에 더해서 엄청난 단백질을 보유하고 있다니 더할 나위 없는 겨울간식인 것이다.

서울에서 어린조카가 왔다.
몸이 허약해서 침을 자주 흘리고 잘 뛰어놀지도 못해서 어른들의 걱정이 많은 아이라 겨울 동안  좋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 속에서 놀다 보면 조금이라도 건강해지지 않을까 해서 온 것이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쐐기를 잡아 조카에게 먹이라는 명령을 내리신다.
신나게 산을 누벼 꽤나 많은 쐐기를 수확했다.
조카는 꿈틀거리는 애벌레를 보고 기겁을 하며 온 몸으로 거부한다.
그래서 바싹 구운 쐐기를 부숴서 형체를 알 수 없게 했는데도 이미 애벌레인 것을 알았기에 먹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는 아버지 명령을 수행해야 하므로 강제로 먹이려고 하자 조카는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언니는 입을 벌리고 우는 조카의 혀에 쐐기 가루를 묻혀버렸다.
더 크게 울면서 혀에 묻은 쐐기를 털어내려던 조카는 입맛을 다시더니 울음을 멈춘다.
그러더니 석쇠 위의 쐐기를 집어서 먹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럴 줄 알았어 하는 미소를 지으며 흐뭇하게 조카를 응원한다.
쐐기의 맛을 알아버린 조카 때문에 거의 매일 산을 헤매야 하는 고단함이 생겼지만 봄이 되어 서울로 돌아가는 조카는 더 이상 침을 흘리지 않는 기적을 가지고 갔다.

8차선 도로 옆의 라일락 나무에 매달린 쐐기집을 보았다.
지금은 저 쐐기를 먹을 용기는 없지만 옛 추억이 생각나서 사진으로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