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골 이야기

얼음에 뜨는 무지개

느긋한 늑대 2025. 1. 12. 13:15

겨울이 깊어갈수록 집 앞 개울의 얼음도 점점 두꺼워진다.
개울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계곡물이라 동네 한 가운데로 흐르는 큰 개울물 보다 뭘씬 더 차갑다.
아버지는 30~40cm정도의 두꺼운 얼음을 도끼로 찍어서 둥글게 얼음구멍을 뚫어주셨다.
먹을 물과 데워서 쓸 물을 이 얼음구멍을 통해서 다 해결해야한다.
각자 양 손에 양동이를 들고 개울과 집을 오가며 물을 긷는 일은 매일 저녁마다 해야하는 중요한 일과중 하나다.
큰 가마솥에 가득 물을 채워야 해서 여러 번 개울과 집을 왔다갔다 하다 보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입김은 더 진해진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야 겨우 작업이 끝난다.
다음 날 오전에 빨랫감을 들고 개울로 가면 뚫어놓은 얼음구멍이 다시 제법 두터운 얼음으로 덮여 있다.
팔팔 끓여간 물을 조금 흘리고 빨래방망이로 두드려서 얼음을 깬다.
바가지로 물을 퍼서 대야에 담고 맨 손으로 빨래를 하다보면 뼛속까지 시렵다 못해 손이 따끔거린다.
끓여 간 뜨거운 물에 수시로  손을 적셔가며, 호호 불어가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로 빨래를 한다.
한참을 하다보면 목도 마르고 힘도 들어서 잠깐 숨을 돌리기로 한다.
빨래방망이로 얼음구덩이 벽을 세게 치면 작은 얼음 조각들이 물 위에 동동 뜬다.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 시원하고 차가운 청량감에 머리가 뻥 뚫리는 기분이든다.
입 안의 얼음이 녹자마자 또 한 개를 집어드는데, 얼음벽에 하늘에 둥실 떠 오른 햇살을 받아 무지개가 서린다.
겨울에, 하늘도 아닌 작은 얼음구덩이에서 무지개를 보니 참 예쁘기도 하고 얼음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무지개가 서린 얼음을 쪼아서 얼음 조각을 입에 넣으니
마치 무지개를 먹는 기분이 든다.
손이 꽁꽁 얼어도, 발이 감각이 없을만큼 시려워도, 볼을 연신 스치는 바람이 살을 에는 듯 추워도 무지개를 먹으며 하는 빨래는 즐겁다.
마음에 예쁜 무지개를 가득 채우고 꽁꽁 언 빨래를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간다.
내일은 빨랫감이 없어도 무지개를 먹으러 또 나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