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골 이야기

논 썰매장 개장

느긋한 늑대 2025. 1. 9. 11:44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깊숙한 겨울 날, 개울물도 꽝꽝 얼고 처마 끝에 고드름도 굵고 길어진다.
오늘은 논 썰매장이 개장을 하는 날이다.
아버지는 며칠 전 부터 벼 그루터기가 남아있는 논에 물을  채우고 얼면 또 채우고를 반복해서 단단하고 좋은 빙질의 썰매장을 완성하셨다.
이 정도면  썰매가 깨진 얼음에 박힐 일은 없겠다는 판단이 되어 썰매를 타도 좋다는 말씀을 하신 순간부터 나는 신이 나기 시작했다.
썰매를 탈 생각에 설레는 바람에 아침밥을 먹는 시간도 더디게 간다.
밥을 먹자마자 부리나케 썰매부터 찾는다.
'발구'라고 부르는 우리들의 썰매는 집집마다 어른들이 만들어 주시는 수제썰매다.
나무를 두껍게 켜서 두 무릎을 댈 정도의 크기로 자른. 후, 가장가리에 길게 나무막대기를 붙이고 뒤집어서보면 ㅠ자형이 된다.
나무막대기 정중앙에 길에 굵은 철사를 끼우면 이철사가 얼음과의 마찰부분을 담당하는데, 쇠붙이라 얼음에서 잘 미끄러지니 발구썰매의 핵심이다.
양 손에 잡을 지팡이도 필요하다.
내 손에 알맞은 두께의 나무 막대기 한 쪽에 굵은 쇠못을 거꾸로 박아서 뾰족한 쇠못이 얼음을 찍으며 썰매를 앞으로 나가게 하는 전략적인 소품이다.
발구를 옆구리에 끼고 씩씩하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논썰매장으로 가니, 어제부터 신나게 소문을 낸 덕에 벌써부터 썰매장은 왁자지껄하다.
무릎을 꿇고 타는 사람, 서서 타는 사람, 외발구로 아슬아슬 중심잡느라 애쓰며 스릴을 즐기는 사람, 엉덩이로 털썩 앉아서 타는 사람, 지팡이 없이 손으로 얼음을 밀며 타는 사람, 발구 없이 발로 미끄럼을 타는 사람 등등, 새로 개장한 논썰매장은 당장 성업중이다.
귀와 코가 빨개져도, 콧물이 줄줄 흘러도 절대 끝내지 않을 것 같은 의지로 엎어지고 자빠져도 낄낄깔깔, 겨울의 산골 스포츠는 하루 종일 즐겁다.
서쪽 산능성이에 해가 기웃기웃 걸쳐지고 산그늘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해서야 하나 둘 아쉬움을 접고 썰매장을 떠난다.
겨울 내내 떠들썩할 썰매장에 새로 내리는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