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골 이야기

밥그릇으로 만드는 팥 아이스크림

느긋한 늑대 2025. 1. 8. 17:43
  • 동지섣달 매서운 바람이 산골짜기에 휘몰아친다.

우리 동네는 산에 겹겹이 둘러싸인 첩첩 산중이라 날이 일찍 저문다.
서둘러 저녁밥을 먹고 일찌감치 방으로 들어와 긴긴 겨울밤을 보낸다
언니가 설거지를 끝내고 삶은 팥을 솥 안에 앉친다.
내일은 팥밥을 하려나보다.
팥을 보니 팥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진 나는 설거지를 마친 스텐 밥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고 무척 애처로운 눈빛으로 언니를 쳐다보며 뭔가 원하는 것이 있음을 알리려고 애를 쓴다.
그런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던 언니는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표정을 하더니 씨익~ 웃으면서 삶은 팥을 한웅큼 밥그릇 안에 넣어준다.
신나게 뛰어서 개울로 향한 나는 얼음이 버석거리는 개울물을 밥그릇에 담는다.
다시 부엌으로 가서 뒷정리를 하는 언니를 또 졸졸 쫓아다니면 언니는 못이기는 척 단맛 나는 가루를 넣어준다.
싸리나무 막대기로 휘휘 저어서 녹인 후 막대기를 꽂은 채 부뚜막에 그릇을 놓고 방으로 들어간다.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단잠을 자는 사이 달고 시원한 하드가 만들어질 것이다.
부지런한 닭이 횃대를 구르며 호령하듯 꼬끼오를 외치는 아침이 밝으면 부리나케 부엌으로 달려간다.
밤새 꽝꽝 언 밥그릇속의 얼음을 보니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두 손으로 밥그릇을 감싸고 아궁이의 불을 쬐다보면 가장자리가 녹은 얼음이 그릇 안에서 막대기로 휘젓는대로 빙글빙글 돈다.
막대기를 잡고 밥그릇을 뒤집으면 가라앉아 얼어있는 팥이 먹음직스럽게 들어찬 하드가 내 손에 있다.
앞니로 갉작갉작 긁어서 얼음 가루를 먹기 시작한다.
팥과 어우러지는 단맛의 얼음이 어떤 간식도 부럽지않다.
추운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고급 간식이라 혼자만 먹기에는 아깝다.
언니들과 번갈아가며 갉작갉작 긁어먹는 아이스크림의 달고 시원한 맛에 추운 것도 잊는다.
작은 초가집에 한참동안 얼음 갉는 소리가 울린다.